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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도 중고가 되나요?

2018/05/28

2013년에 어느 인터넷 매체에 게재하려다가 (저작권법 변호사 감수를 못 받아) 썩혀 둔 글을 올린다. 단, 변호사 자격이 없는 요구맹 개인의 의견이다.

Q: “전자책 판권은 아직 저한테 있나요?”

A: “출판 계약서에 전자책 관련 조항이 있나요?”

Q: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인을 거쳐서 해서 계약서 없이 진행했어요.”

내가 어떤 한인 변호사와 나눈 전화 통화이다. 헷갈리겠지만 Q는 내가 아니라 미국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이민법 전문 변호사다. 즉, 저작권법은 전문 변호사말고는 잘 모른다. 오히려 ‘바보도 같이 보는 저작권법’을 2번 읽은 출판인이 더 많이 알 수도 있다.

아들아, 내 아이튠즈 비밀번호는 @#$@다. 꼴깍.

설상가상으로 저작권법과 관련 판례는 정보 기술의 발전에 뒤쳐져있다. 예를 들어, 전자책은 남한테 못 넘기나? 상속은 되나?

미국은 1998년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이하 DMCA)으로 디지털 저작권의 권리와 한계를 재규정했다. DMCA는 저작물에 적용된 ‘디지털 권리 관리'(이하 DRM)를 우회하는 기술이나 서비스의 배포를 범죄로 본다. 내가 알기로 2012년에 개정된 한국 저작권법에는 DRM 조항이 없다.

간단한 저작권 퀴즈를 풀어보자.

내가 작가 유시민의 비공개 서신을 (적법한 절차를 밟아) 백만 원에 샀다고 하자. 서신의 소유주는? 나다. 서신의 저작권자는? (별도의 저작권 양도 계약이 없는 한) 유시민이다. 유시민은 저작권자로서 해당 서신을 복제하고 배포할 독점적인 권리를 여전히 보유한다. 즉, “내가 산 내 원고 내가 출판하는데 누가 뭐래?”라며 (유시민의 허락없이) 유시민 서신 출판을 했다가는 5년 이하의 징역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서신으로 대마초를 말아 피우건, 장터에서 팔건 어쩌건 법적인 문제는 없다. 이걸 미국에선 ‘권리소진의 윈칙'(first-sale doctrine)이라고 한다.

본론인 전자책 양도로 넘어가자. 2013년 2월 아마존은 중고 전자책 마켓에 관련된 특허를 따냈다. 그해 3월 애플은 중고 전자책을 사고 팔 수 있는 특허를 출원했다. 2011년 미국 ReDigi라는 벤처는 음악 파일을 개인이 사고 팔수 있는 마켓을 시작했는데 한 음반사가 소송을 걸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럼 내가 산 소프트웨어 DVD도 팔 수 있을까? 없다. 왜냐.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마주치는 ‘소프트웨어 사용권 동의'(EULA)라는 계약을 눈여겨 보았나? 사용자가 계약에 동의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계약에서 제작사는 소프트웨어 사용권, 즉 라이선스를 파는 것이며, 라이선스는 양도할 수 없다는 (권리소진의 원칙을 제한하는) 조항을 넣는다. 그러니까 만일 내가 소프트웨어 DVD를 온라인 장터에서 팔면 저작권법보다는 계약위반으로 민사 소송을 당한다. 그래서 아마존 중고 장터에 가면 중고 소프트웨어 CD, DVD는 찾아볼 수 없다. (EU에서는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도 양도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유는 강남 스타일

그런데 전자책이나 MP3를 사면서 (매 건마다) 라이선스에 동의를 해본 적이 있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 관할법은 저작권법으로 넘어간다. 내가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강남 스타일’ MP3를 유시민에게 넘기면 저작권법의 어떤 조항에 걸리나? 복제권이다. ‘강남 스타일’ MP3 복제권이 없는 내가 이메일에 파일을 첨부하거나 웹하드에 파일을 올리는 순간에 복제 행위가 일어난다. 앞서 말한 ReDigi는 복제를 하지 않고 MP3 파일을 판매자의 PC에서 구매자의 PC로 옮기는 기술을 쓴다고 주장한다. 미루어 짐작컨대 판매자의 MP3 파일을 가령 1MB 단위로 쪼개서 옮기면서 판매자의 MP3 파일에서 옮아간 영역을 지우는 꼼수로 보인다. 이게 저작권법상 복제인가? 난 모른다.

전자책의 경우라면 DRM때문에 흥미로운 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전자책 중고 장터 특허를 취득한 아마존과 출원한 애플은 전자책 유통사면서 동시에 자체 DRM을 전자책에 적용한다. 출판사는 전자책 유통사에게 저작권법상 유통권을 준다. 그런데 개개인이 전자책을 사는 순간 전자책 복제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실상 복제권도 준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아마존은 자체 DRM 기술이 있기 때문에 판매자가 팔려는 전자책이 적법성을 확인할 수 있고, 거래 대상인 전자책에서 DRM을 해제할 수 있다. 복제권이 있기 때문에 자체 서버에 전자책을 복제한 후 DRM을 다시 걸어서 구매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 애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출판계로서는 속이 부글거릴 노릇이다.

개인적인 분석으로는 아마존이나 애플이나 냉전시대의 핵억제력과 비슷한 차원에서 특허를 출원했거나 따냈다고 본다. 그러니까 아마존은 ‘애플, 니가 터트리면 우리도 터트린다. 다 죽자’가 아닐지. 왜냐면 중고 장터 사업이 회사의 매출 성장과 전체 전자책 시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지 계산이 안 나온다. 아마존이 중고 전자책을 팔아서 전체 전자책 매출과 순이익을 높일 수 있을까? 출판계가 죄다 아마존에 전자책 공급을 끊고 애플로 가면 어쩌지? 여론은 아마존을 도와줄까?

그럼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국내 전자책 서점은 전자책 유통권이 있기 때문에 복제권도 있으나 DRM은 외부 기술을 쓴다. (어도비 DRM나 마크애니 DRM. 리디북스의 경우는 모른다) 그래서 아직 한국 출판계는 안심해도 된다. 단, 특정 전자책 서점이 DRM 업체와 제휴해서 DRM 제거 기술을 보유하거나, 알고보니 자체 DRM을 쓰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참조
1. http://en.wikipedia.org/wiki/Copyright_Act_of_1909
2. http://en.wikipedia.org/wiki/Copyright_Act_of_1976
3.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 http://en.wikipedia.org/wiki/Digital_Millennium_Copyright_Act
4. 디지털 권리 관리 http://ko.wikipedia.org/wiki/%EB%94%94%EC%A7%80%ED%84%B8_%EA%B6%8C%EB%A6%AC_%EA%B4%80%EB%A6%AC
5. 저작권법. http://www.law.go.kr/%EB%B2%95%EB%A0%B9/%EC%A0%80%EC%9E%91%EA%B6%8C%EB%B2%95
6. 권리소진의 원칙. http://www.ktc.go.kr/db/cl/kdc_TradeRemedyPaper_view.jsp?seq=215&sn=7
7. 소프트웨어 사용권 동의. http://en.wikipedia.org/wiki/EULA

From →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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